욕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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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0-30 19:05 조회7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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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관하여 |
이주영 판사(서울고등법원) |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능이고 원초적 욕망이다. 성폭력 전담 재판부에 있다 보니 매주 온갖 성범죄와 마주한다. 최근 신문 지상을 가장 자주 장식하는 것도 온갖 상황에서의 성범죄 관련 뉴스들이니, 이 욕망이라는 것이 이리도 강하고 무서운 것인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화학적 거세, 정확히 말하면 성충동 약물치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지극히 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그런데 최근, 이 성충동 약물치료와 관련하여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성충동 약물치료의 기본적 원리는 약물을 통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하여 그 체내 수치를 ‘0’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생식능력이 제한되고, 성충동 자체가 현저히 낮아진다고 한다. 외국의 통계를 보면, 재범률 역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호르몬이 성충동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성범죄자들의 재범 위험성 판단을 위한 조사서에도 테스토스테론 수치 검사 결과도 적어 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성충동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 결과 정상 범위 내에서는 그 수치와 성범죄 사이에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성충동이 성범죄로 나아가는 것은, 충동의 크기가 아니라 그의 ‘습(習)’이 좌우한다는 이야기였다. 즉 무의식 중에 배어 있는 성에 대한 인식, 욕망을 대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폭력성 등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습을 바꾸지 않는 한은 아무리 장기간 약물을 맞아도, 심지어 약물을 맞는 동안에도 언제든 재범할 수 있고, 따라서 성충동 약물치료는 반드시 본인의 의지, 그리고 적절한 인지행동치료와 병행되어야 유의미하다는 결론이었다. 본능만을 놓고 본다면, 인간 역시 동물이다. 그러나 감히 인간이 여타 동물보다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본능과 욕망을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고, 더 높은 가치와 더 나은 자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 아닐까? 역시, 욕망 자체는 무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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